
가디언뉴스 김재한 기자 | 여름 휴가철을 맞아 시원한 계곡이나 바다로 떠나야 할 주식 투자자들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지고 있다. 연일 뉴스 화면을 장식하는 빨간불과 파란불의 혼돈 속에서, 코스피 지수가 한때 6300선을 가리키며 역대급 변동성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최고점 대비 30%가 넘는 폭락 장세가 연출되면서 증권가 게시판과 오픈채팅방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가득 찼다. 평생 주식이라곤 적금만 붓던 직장인들까지 패닉에 빠져 손절매 버튼을 만지작거리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하지만 시장의 한구석에서는 이 공포를 기회로 읽는 냉정한 시선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단숨에 수직 상승하는 전형적인 ‘V자 반등’ 대신, 바닥을 단단하게 다지며 계단식으로 올라서는 이른바 ‘√자 반등’이 시작되었다는 분석이다.
사람들은 폭락장이라는 눈앞의 숫자와 빨간 피비린내 나는 계좌 잔고에 정신이 팔려 있지만, 냉정하게 뜯어보면 이번 하락장은 과거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폭락과는 뼈대부터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도대체 무엇이 다르기에 공포 속에서도 반등을 점치는 것인지, 그 내막을 하나씩 뜯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시장을 지배하는 가장 큰 공포의 근원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거센 매도 공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증시를 지탱하는 대들보 같은 대형 반도체주를 향해 외국인들은 사정없이 매물 폭탄을 던져댔다. 7월 한 달 동안 코스피 시장을 떠난 외국인의 자금 규모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컸고, 8월의 첫 주가 시작되는 시점에도 정규시장과 넥스트레이드를 합쳐 무려 7조 4000억 원에 달하는 물량이 순매도됐다. 지수가 버틸 재간이 없었던 셈이다.
여기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벌어진 기형적인 수급 왜곡 역시 시장의 변동성을 키운 주범이었다. 7월 말까지만 해도 전체 코스피 시장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차지하는 비중이 32.5%까지 치솟으며 기계적인 매매를 유발했고, 이는 증시의 낙폭을 인위적으로 키우는 부작용을 낳았다. 다행히 이 비중이 이달 7일 기준으로 3.4%까지 급감하면서 레버리지발 파열음은 한결 진정되는 모양새지만, 상처 입은 투자 심리가 하루아침에 회복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권가 전문가들이 이번 하락을 무조건적인 종말의 시그널로 보지 않는 결정적 이유는 주가와 기업의 실적 사이에 벌어진 엄청난 괴리 때문이다. 과거의 대폭락 장세들을 떠올려보자. 외환위기 때도,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도, 그리고 불과 몇 년 전 전 세계를 멈춰 세웠던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주가가 무너질 때는 어김없이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와 펀더멘털이 함께 고꾸라졌다.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니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그야말로 기이할 정도로 청개구리 같다. 코스피는 최근 고점 대비 33.3%라는 무서운 수치로 주저앉았지만, 기업들의 돈벌이 능력을 보여주는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 전망치는 연초 이후 오히려 약 184%나 폭등했다. 12개월 연속으로 이익 상향 조정 리포트가 쏟아졌다.
실물 경제의 지표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괴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의 수출 액수는 무려 988억 9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62.8%라는 눈부신 증가율을 찍었다. 이 중 반도체 수출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410억 10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178.8%나 뛰어올랐다.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7%를 기록하며 실물 경제의 체력이 여전히 튼튼함을 증명했다. 주가는 바닥을 기고 있는데, 실적은 역대급으로 사상 최대치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셈이다.
가격표를 나타내는 밸류에이션 지표 역시 이미 바닥을 한참 통과했다. 지난 9일 기준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은 5.12배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저점이 6.27배였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저점이 7.53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코스피는 역사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저평가된 헐값 상태다. 시장은 이미 최악의 위기 상황을 주가에 선반영해 두들겨 맞았지만, 실제로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성적표는 호황기를 가리키고 있다.
여기에 거시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미국의 금리 인상 압박도 한풀 꺾였다. 미국의 7월 비농업 부문 고용 지표가 시장의 예상치를 턱없이 밑도는 2만 3천 명 감소를 기록했고, 지난 5월과 6월의 고용 수치마저 대거 하향 조정되면서 노동시장의 과열이 진정되고 있음을 알렸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열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가 추가로 인상될 것이라는 공포는 눈 녹듯 사라지고 인상 확률이 대폭 낮아졌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 역시 4.6%대 안정권으로 내려앉으며 자금 시장의 숨통을 트여주었다. 일본과의 공동 외환시장 개입 덕분에 엔화 약세가 유발할 수 있었던 최악의 금융 불안 시나리오 역시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결국 지금 시장에 남은 과제는 무너진 투자 심리를 다독이고 수급의 톱니바퀴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지수가 수백 포인트씩 급등하는 화려한 V자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나 인버스 상품에 과도하게 쏠렸던 투기적 자금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거래세 보완 등의 제도적 장치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수출 전선의 최전선에 있는 반도체 품목들이 지금의 절대 규모와 일평균 수출 실적을 굳건하게 지켜내야 한다.
공포의 터널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계좌에 찍힌 파란 불을 보며 한숨 쉬는 투자자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숫자가 가리키는 진실은 분명하다. 가격과 금리가 먼저 바닥을 다지고, 탄탄한 실적과 수출 성과가 뒤를 받쳐주는 순간, 코스피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자신만의 ‘√자형’ 상승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갈 것이다.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엔, 지금 우리 증시가 품고 있는 펀더멘털의 저력이 너무나도 아깝고 단단하다.

















